이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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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가 그리 좋은지

혼자 갖은
차시간을위하여



자전거

먼지 앉은 CD를 오랜만에 꺼내 들고는 입김을 불어 CD위에 앉은 먼지를 조심스레 떨어낸다. 클래식 기타 하나로 연주된 몇 장의 앨범들. 그 안에는 한창 순수하고 맑고 꿈많던 시절의 추억이 가득 담겨 있다. 언제 들어도 풋풋하고 따뜻한 미소를 짓게 하는 음악들. 바로 기타리스트 이병우의 감성 어린 손끝이 만들어내는 멜로디들이다.

1965년 1월 22일 건축업을 하시는 아버지와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 사이에서 2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난 이병우가 기타와 만나게 된 인연은 그의 어머니다. 어머니의 권유로 11살 때 기타를 치기 시작해 그의 일생은 기타와 떨어질 수 없게 변해갔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 무릎관절 수술로 1년 동안 학교를 휴학하게 됐을 때 그는 무작정 기타만을 연주했다. 우울하고 고독한 시간들이었지만 그는 기타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그의 생각을 표현하는 값진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철저하게 기타에만 몰두하던 그가 자유로운 세상을 체험하게 된 계기는 서울 예대(당시 서울 예전)에 진학한 후 조동익을 만난 것. 조동익과의 관계 속에서 그는 음악적으로 많은 것을 배웠고 자신의 색깔을 발견해 갔다. 그러던 그가 한국 록의 거목인 들국화 1집에 자신의 자작곡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당당하게 내놓으면서 대중음악계에서 기타리스트로서의 입지를 굳혀갔다.

1980년대 중반 조동익과 결성한 어떤날을 통해 이병우는 단순 세션맨이 아닌 솔로이스트로서 그리고 작곡가로서 인정받기에 충분한 음악적 업적을 남겼다. 한창 인정받으며 활동할 무렵 그는 유학을 결심,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로 먼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중에도 자신의 독집앨범을 틈틈이 발표하긴 했으나, 고국에서 그의 신들린 듯한 아름다운 연주에 목말라 하던 팬들의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던 것이 사실. 하지만 그는 빈 국립음대 기타과를 수석으로 졸업하는 것으로 흡족해 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미국 피바디 음대로 유학길을 연장했다. 그리고 유학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2000년 가을, 드디어 귀국의 기쁜 소식을 한국의 팬들에게 알렸다. 감성적인 연주.. 그 위에 얹혀지는 시를 읆조리는 듯한..
희미한 풍경처럼 나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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